도시

시간이 멈춘 도시, 폼페이에 가다.(feat.유로 자전거나라)

ez_year 2013. 12. 8. 00:06

올해가 가기전에 내 반드시 유럽여행 사진을 업로드 하고 말겠어! 라는 굳은 결심이 점점 나약해지고 있다.

 

아- 따뜻한 코코아 마시고 싶다.(뜬금없이;;)

 

집에 우유만 있는 이 불편한 진실. 미떼먹고 싶다 미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좀전에 채널 돌리다보니 이탈리아가 나와서 급 생각나서 포스팅 시작.

 

오늘은 화산폭발로 인해 화산재에 뒤덮혀 사라졌던 도시, 폼페이를 이야기할까 한다.

 

 

오늘의 집결지 역시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

 

성당앞 분수에서 반신욕하는 비둘기. 풉~

 

집결 시간은 7시이지만 이날의 일정은 폼페이를 들렸다가 남부로 가서 바닷가를 드라이브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창가쪽 자리에 앉을려면 좀 더 서둘러서 가야했다.

 

 

비몽사몽 새벽같이 일어나 겨우겨우 씻고 서둘러가서 창가쪽에 자리를 맡아놓고

 

전날 사둔 케밥으로 대충 허기를 달랬다.

 

버스 출발과 함께 가이드의 소개와 설명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출발한지 몇 분 되지 않아 우린 꿈나라로...

 

 

고속도로를 타고 약 3시간정도를 가야했는데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차에 있기 답답해서 잠시 내려서 일광욕좀 하고,

 

 

꽃도 찍고,

 

 

휴게소도 찍었다.

 

뭔가 굉장히 한적해 보이는 휴게소.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판다고 했는데 안들어가봐서 모르겠음.

 

 

우리가 이용했던 유로 자전거 나라 버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남부투어는 멀기도 하지만

 

길이 사나워서 현지 기사님들도 별로 가고싶어 하지 않는곳이라고 했는데

 

좋은 기사님들을 섭외해서 유일하게 자기들만 있는 코스라고 했다.

 

그 전에는 트램을 타고 진짜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해가면서 갔다고 하는데 우린 버스로 편안하게 다녀왔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주려고 끊임없이 설명했지만

 

언제 어디서나 머리만 대면 잠이드는 나와 신랑은 그마저도 자장가로 들렸다.

 

 

그렇게 버스에서 머리를 맞대고 꿀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폼페이에 도착.

 

잠에서 덜 깬건지 아님 버스를 너무 오래탔던건지 정신이 몽롱-

 

 

입장하기 전 멀리서 바라본 폼페이.

 

 

이번 여행을 함께했던 가이드는 바람불면 날아가게 생기신 남자분이셨다.

 

말끝마다 "에?" 하고 되묻는 습관이 있어서 내내 거슬렸었음....

 

그래도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계셨고 여행자들에게 참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입장시 현지 경비인에게 무슨 신고 절차같은걸 하고 입장-

 

 

지금은 육지이지만 그 당시는 항구도시였던 폼페이.

 

저 오르막길의 아랫쪽이 바로 항구 였다고 한다.

 

 

 

뜨거운 폼페이는 그늘이 없어 모자, 선글라스, 썬크림은 필수!!! 인데 그땐 몰랐지.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 24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그 화산재에 덮혀버린 도시이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화산폭발이 대체 뭔지조차 몰랐을 거라고 한다.

 

뭔가 이상징후를 느꼈다면 도망갔을테지만 당시에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들은 그대로 화산재에 덮혔을거라고 한다.

 

그 화산폭발로 인해 폼페이 인구의 10%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린 화산재와 모래, 돌등에 덮혀

 

질식하거나 불에 타 죽었을거라고 한다.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늘에 세워놓고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횽.

 

 

바닥에 보면 하얀 돌들이 군데군데 박힌게 보이는데 이 돌들이 바로 길 안내를 했을거라고 추측한다고 한다.

 

저 하얀 돌들은 밤에 달빛이나 불빛에 반사되어 길 안내를 하는 역할을 했을거라고 하는데...천잰데?

 

 

지금 가이드횽이 서있는곳은 징검다리.

 

도로위로 마차가 다녔을거고 상류에서 하류로 물이 흘렀을거고

 

그럼 자연스레 더러운것들이 저 가운데로 흘렀을테고(말똥같은거)

 

사람들이 건너기 위해서는 저런 징검다리를 놓았을거라는 것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는방법은 똑같은 듯.

 

 

가는길 곳곳에 많은 이들이 모여 회의를 했을법한 장소나 행사를 열었을듯한 장소들이 많이 있었다.

 

이미 2000년전에 현대도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각종 문화적인 시설을 갖추었던 폼페이인들은

 

고대 도시국가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발달된 문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야...니들 어디 개들이냐...

 

그늘에서 너무나도 평온하게 휴식을 취하던 개님들.

 

 

발굴된 폼페이에는 신전과 시장, 시청 등 다양한 건물들과 상하수도가 있고 도로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종교, 정치, 경제의 중심이었던 이 곳.

 

 

저기 벽 쪽에 서계시는 분은 현지 가이드인데 그냥 저렇게 우리만 따라 다니고 돈벌어가는 거라고 하셨다.

 

이탈리아는 관광수입이 어마어마어마어마하니깐 별놈의 직업이 다 있는듯...

 

여행 초반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우리의 모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촤하하하하!

 

 

뭐라 설명해주셨지만 뭐하는곳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나저나 렌즈가 문제인가 카메라가 문제인가 ㅠㅠ 저거 어디가서 고치나요? 신경쓰여 죽겠네...

 

 

폼페이에는 엄청나게 큰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목욕문화가 발달했던 로마.

 

 

때불리는 곳이었던 듯.

 

 

저 중간중간이 귀중품 보관함이라고 했다.

 

멋스러운 조각들이 건물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때미는 곳이 아니었을까...조심스레 추측을 해본다.

 

 

목욕탕 벽면이 뭐라고 저렇게 세심하게 조각들을 새겨뒀을까?

 

 

온탕.

 

왼쪽 아래쪽에 불때는 곳이 있었다.

 

당시 폼페이에는 인구가 2만명에 달했고 노예가 8천명정도였다고 한다.

 

많은 노예들이 불을 때고 청소를 하고 그들의 시중을 들었겠지.

 

 

주변에 빙 둘러진 글씨가 뭔지 궁금해 물어봤더니 아마도 저 조각물을 기증한 사람의 이름이었을것이라고 한다.

 

생색내기는....

 

 

괜히 그앞에서 한장.

 

 

목욕탕의 천정인데, 아치형으로 되어있고 골이 파져있는데

 

그 이유가 저렇게 골이 있으면 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게 아니고 골을 타고 옆으로 흘러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잰데?(2)

 

 

이곳은 번화가였을것이라고 추정되는 도로라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로데오거리?

 

 

양쪽으로 많은 상점들이 즐비했을 것이라고 한다.

 

 

저 구멍파진곳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었을 테고 목욕을 마치고 나와 이곳에 들러 허기진 배를 달랬을 것이라고 했다.

 

 

오!

 

그리고 이곳이 파리바게트, 크라운베이커리, 뚜레쥬르의 조상급인 빵굽는 빵집이라고 한다.

 

실제로 저 화덕에서는 굽다만 빵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술집위 테이블에서 술잔도 발굴되고 그들이 폭발당시 먹었을 음식들역시 발굴되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의 시대적 상황이 어땠는지 알수있는 최고의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누구는 불에 타죽는 그 순간들이 지금은 최고 귀중한 자료라고 하니 뭔가 참 씁쓸하다.

 

 

이곳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동 수도와

 

이와함께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기 위한 수도관 시설도 있었다고 한다.

 

물을 길러다 쓰는게 아니라 물을 끌어다 썼다는 것.

 

굉장히 굉장하고 대단히 대단한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전히 발굴중인 폼페이.

 

폼페이는 1592년 폼페이를 통과하는 운하를 건설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본격적인 발굴작업이 힘들었고

 

1748년 프랑스에 어쩌고 하는 사람이 독점권을 얻어 발굴을 시작했는데 거의 도적질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유물이나 벽화, 미술품은 프랑스의 왕궁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 이후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발굴과 수리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그냥 돌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열심히 찍어놨을까.

 

 

발굴단은 굉장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화산재 밑에 갇혀있다가 죽은 사람이 그 흔적이 사라지고 소멸되고 비어버린 부분에

 

석고를 부어서 굳힌다음 죽은사람의 모습을 재현하여 그 상태가 아주 좋은것은 박물관으로 가져가고

 

이곳에 몇개 남겨두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보인다고 한다.

 

그렇겠지 ㅠ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키와 치아 등의 외형적인 모습을 추측해냈다고 한다.

 

 

이것은 시장이었을것으로 추정되는 벽화.

 

생선그림이나 과일그림들이 그러한 의견을 뒷받침 하고 있다고 한다.

 

 

어우 몰라 여기도 설명들었는데 까먹었어.

 

 

그리고 이 그림...요거요거 잘~ 들여다보시면 부끄부끄한게 보인다.

 

저 모양이 가르키는 방향이 지금으로 치자면 홍등가...뭐 그런곳이라고 하는데 곳곳에 많이 있다고 한다.

 

에혀-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란...-_-;;

 

 

서기 79년의 번화가에 2013년의 내가 찰칵.

 

 

지금사람사는 모습과 크게 다를게 없었던 서기 79년의 폼페이.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고 유로 자전거 나라에서 준비한 점심 도시락은 한식이었다.

 

어우 반갑다 야 ㅠㅠ

 

뜨끈한 쌀밥에 도톰한 계란말이와 볶음김치와 제육볶음.

 

진짜 꿀맛.

 

그늘에 자리잡고 앉아서 뚝딱 먹어 치웠다.

 

 

폼페이는 한 변이 성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이쪽이 그쪽인가...-_-a

 

 

밥 다 먹고 건강한 팔뚝을 드러내며 남는건 사진뿐이니 찰칵.

 

 

그냥 이렇게 흩어져 있는 돌들도 뭔가 다 사연이 있어 보인다.

 

 

현재도 공연이 있으면 공연도 한다는 당시의 공연장.

 

5000명을 수용할수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과학적으로 지어져서 저 무대 한가운데서 박수를 짝! 하고 치면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린다고 해서 해봄.

 

쩌렁쩌렁은 아니어도 울리긴 울림.

 

이양반들 정말 대단하다.

 

 

우리 신랑도 짝!

 

 

각자 관람을 마치고 집결지로 가기전에 괜히 한번 찍어보고.

 

 

나 찍는줄알고 저러고 있었더니 날 찍는게 아니었음. 푸하하

 

오랜만에 모습 드러내주신 동행인.

 

 

이제 떠나야 하는 폼페이.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그들에게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이 참극을 상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그냥 앉아서 밥을 먹고 있다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다가,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속삭이다가...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그냥 그렇게 살다가 하루아침에 재로 변해버린 그들에게 애도를 보낸다.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평범했을 그들의 하루에 자연재해는 그 시간을 멈추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폼페이를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하나보다.

 

시간이 멈춘거 맞네.

 

 

 

 

몇년전 한창 싸이월드가 유행할때 감성돋는 글이 있어서 스크랩했었는데

 

그 글이 바로 이 폼페이와 관련된 것이라는걸 몇 일 전 알았다.

 

 

죽어서도 놓지 못할..

그렇게 서로를 꼬옥 안아주었다고한다.

서로의 영혼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울림이 주변을 둘러싸고,

 

한사람의 절실함이 아닌, 서로의 절실함이

이렇게도 간절하여

 

서로를 놓지 못한다고 한다.

죽어서도 놓지 못할 손이 정녕 있었다고 한다.

죽어서도 놓지 못할 마음이 정녕 있었다고 한다.

몸을 태우는 용암의 그 뜨거움에도 서로를 놓을수 없었다고한다

@폼페이 화산 유적-

 

 

 

 

 

이제 그만 그들에게도 멈추었던 시간이 흘러가길.